
원효가 머물렀다고 전하는 경주 분황사의 모전석탑. 요석궁이나 두 사람의 만남을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촬영: Christophe95, 2018년 10월 2일. 출처: Wikimedia Commons. 라이선스: CC BY-SA 4.0. 변경: 크기 축소.
깨달음을 얻은 고승이 왕의 딸과 인연을 맺고 아들까지 두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 원효(617~686)의 삶에는 불교의 엄격한 계율과 세속의 경계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이야기가 전한다. 주인공은 태종무열왕의 딸로 알려진 요석공주와 그의 아들 설총이다.
원효는 신라 불교사에서 손꼽히는 사상가다. 당나라 유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겪었다고 전해지는 해골물 이야기는 그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물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다만 전승에 담긴 세부 장면을 모두 확인된 역사적 사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원효의 삶에서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출가자의 신분을 벗어난 행적이다. 《삼국유사》 권4 〈원효불기〉에는 그가 거리에서 도끼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려 하노라”라는 내용이다. 이를 들은 태종무열왕이 훌륭한 인재를 얻을 징조로 해석했다는 것이 설화의 줄거리다.
이후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시고 요석궁에 머물렀으며, 그 인연으로 설총이 태어났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오늘날의 연애담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실제 두 사람의 감정이나 왕실이 의도적으로 만남을 주선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석공주의 이름과 결연의 구체적인 과정 역시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존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료상의 차이가 있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권46 〈설총 열전〉은 원효가 불경에 통달한 뒤 환속하여 소성거사를 자처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요석공주와의 만남이나 도끼 노래, 요석궁에 머문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반면 고려시대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는 이와 관련된 일화를 전한다. 두 기록은 서로 다른 성격과 목적을 지닌 사료이므로 어느 한쪽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기록의 배경과 의미를 함께 살펴야 한다.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설총은 신라의 대표적인 유학자다. 《삼국사기》는 그가 우리말로 경전을 풀이해 후학을 가르쳤다고 기록한다. 또한 이두를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두를 처음 창제했다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기존에 사용되던 표기 방식을 발전시키고 정리한 공적과 구별해야 한다.
원효의 사상은 파계라는 개인적 사건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어려운 불교 교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대중에게 전달하려 했다. 《삼국유사》에는 원효가 무애 노래와 춤을 통해 민중 속에서 교화 활동을 펼쳤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출가자의 엄격한 수행 공간을 넘어 일반 백성의 삶 가까이에서 불교를 전하려 했다는 점이 그의 행적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그의 대표 사상인 화쟁 역시 오늘날 되새길 만하다. 화쟁은 서로 다른 불교 교리의 대립을 깊이 살펴 그 안의 타당성을 이해하고 조화를 모색하는 사상이다. 모든 차이를 없애거나 무조건 양보하자는 뜻은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가 왜 생겼는지 살피고 더 높은 차원의 이해를 추구하는 철학이다.
원효의 파계를 불교 대중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요석공주와의 인연도 후대의 설화적 서술을 통해 전해지는 만큼 실제 사랑의 감정까지 역사적 사실로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원효가 기존의 형식과 경계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삶은 출가와 환속, 수행과 민중교화, 서로 다른 사상의 조화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원효를 단순히 계율을 깨고 공주와 사랑에 빠진 승려로 기억한다면 그의 역사적 의미를 놓치게 된다. 파격적인 일화 뒤에는 시대의 경계를 넘어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려 했던 사상가의 모습이 있다. 원효의 진정한 반전은 사랑 이야기의 극적인 결말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진리를 전하려 했던 그의 삶에 있다.
사료·참고: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DB 《삼국사기》 권46 설총 열전, 《삼국유사》 권4 원효불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효불기 설화〉·〈설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