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던 길이 28년이 걸렸다. 영국의 ‘칼 부시비’가 1998년 칠레 남단에서 첫걸음을 뗀 뒤, 2026년 11월 2일 고향 ‘헐’에 있는 어머니의 집 앞에 섰다. 그는 탈것에 기대지 않고 대륙과 바다를 건넜다. 얼음 바다와 밀림, 국경과 비자의 벽을 넘은 끝에 그가 닿은 곳은 화려한 결승선이 아니라 한 어머니의 현관문이었다. 끝까지 걷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의 발자국이 묻고 있다.
생일 카드 한 장에서 시작된 걸음
영국 헐 출신의 칼 부시비는 영국군 공수 부대원이었다. 출발의 씨앗은 아버지가 보낸 생일 카드였다. 런던에서 베링 해협을 거쳐 뉴욕까지 걸어갈 수 있는지를 두고 특수부대원 둘이 다퉜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1998년 11월 1일, 스물아홉 살의 그는 칠레 남단의 푼타아레나스에서 첫걸음을 뗐다. 규칙은 두 가지였다. 앞으로 나아갈 때 탈것을 쓰지 않고, 걸어서 도착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12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밀림과 얼음 바다, 그리고 두 번의 수영
그 길은 28년이 걸렸다. 그는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의 밀림 다리엔 갭을 지났고, 2006년에는 프랑스 탐험가 디미트리 키퍼와 얼어붙은 베링 해협을 14일 동안 걸어 알래스카에서 러시아로 건넜다. 비자가 막히고 후원이 끊겨 몇 해씩 발이 묶였다. 육로가 닫히자 2024년에는 카스피해를 31일 동안 헤엄쳐 카자흐스탄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건넜다. 조지아와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을 가로질렀고, 해저터널 통행을 거절당하자, 지난달 영국해협마저 헤엄쳐 건넜다. 그렇게 약 5만 km를 걸으며 29개국 안팎을 지났다.
"이런 귀향은 없을 것"
11월 2일, 쉰일곱 살이 된 그는 헐의 어머니 집 앞에 섰다. 몰려든 인파 앞에서 그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웃었다. 이런 귀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정말 미친 일이라고도 했다. 그는 하루하루 목표에서 벗어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돌아봤다. 목숨을 여러 번 걸고 나니, 그 모든 것이 의미를 갖도록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기록이 아니라 귀가
그 길에는 대가도 있었다. 28년 동안 그는 어머니와 아들을 손에 꼽을 만큼밖에 보지 못했고, 아직 만나지 못한 손녀도 있다. 한 사람의 꿈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마침내 어머니의 문 앞에 닿았다. 누군가에게는 기록이지만, 그에게는 오래 미뤄 둔 귀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