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른 뒤

Journey

After all these years


중년을 넘어, 이제 ‘늙은이’라는 타이틀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우리에게도 사랑은 여전히 작은 떨림으로 남아 있다. Journey의 「After All These Years」는 바로 그 떨림을, 그러나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게, 마치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꺼내 드는 듯한 방식으로 노래한다. faded wedding photograph, first dance. 그 한 구절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사진 속 주인공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미지: AI image.antnews>

세대가 바뀌고, 디지털 사운드가 판을 치기 시작하던 때에, “사랑은 영원하다”는 로맨틱한 환상을 팔지 않았다. 대신 “시간이 지나도, 상처가 쌓여도, 여전히 너와 함께라면 매일이 brand new”라는, 다소 진부하지만 진심 어린 고백을 했다.

 

당시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는 이혼율이 높아지고, ‘시리얼 모노가미’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결혼은 더 이상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하면’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지만 산을 넘고, 웃음과 눈물을 함께 삼키며, 아이들이 자라난 집에서 여전히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을 그린 풍경도 낯설지않았다.

 

우리 사회는 ‘워라밸’과 ‘나답게 사는 삶’을 외치며, 결혼과 가족을 선택이 아닌 옵션으로 여기게 되었다. 1인 가구가 폭증하고, 비혼·만혼이 당연해졌으며, 중년 이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SNS에서는 “결혼은 로맨스가 아니라 계약”이라는 냉소적인 meme이 유행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보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 공공연히 오간다. 그런 시대에 「After All These Years」는 거의 혁명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오랜 세월’ 자체를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오랜 세월 속에서 서로를 ‘brand new’하게 만드는 힘, 그 작은 기적을 노래한다.

 

한국의 중년·노년 세대에게 그 산은 실제였다. IMF, 외환위기, 구조조정, 자녀 교육 전쟁, 부모 봉양, 그리고 코로나까지. 함께 올라온 산맥이다. 그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화려하지 않다. 아이들이 자란 빈 방, 주름이 깊어진 서로의 얼굴, 그리고 여전히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익숙한 사람. 그런데도 “You make it feel brand new”라는 후렴이 나올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바로 그 익숙함 속에 새로움이 있다는 역설 때문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우리는 더 감동적인 사랑을 할 수 있을까? 20대 때처럼 뜨겁게, 30대 때처럼 치열하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이제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결국 ‘견디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견디는 과정에서 서로가 조금씩 닳아 없어지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더 선명하게 새겨 넣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곡을 듣는 늙어가는 우리들은, 목이 메인 채로 속으로 중얼거린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좀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안다. 그 ‘조금 더 잘’이라는 것은, 사실 지금 여기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저녁,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서, 소파에 앉아 있는 배우자의 손을 살짝 잡아보는 것. “오늘도 고마워” 한마디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건네보는 것. 그게 바로 ‘brand new’의 시작이다. 산을 더 이상 오를 필요가 없는 나이에는, 그 작은 손짓 하나가 새로운 산이 된다.

 

아이들이 다 크고, 집은 조용해지고, 몸은 점점 무거워지는데도, 여전히 “우리 아직도 서로를 설레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사는 것. 그 질문 자체가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노래를 통해서 조용히 배워간다.

세월에 몸을 맡긴다는 것은, 결국 사랑에도 몸을 맡긴다는 뜻이다. 화려한 불꽃은 이미 오래전에 타올랐고, 이제 남은 것은 은은한 잔불이다. 하지만 그 잔불이 오래도록 타오르려면, 매일 조금씩 새 장작을 넣어야 한다.

 

늙어가는 우리에게 사랑은 더 이상 ‘찾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지키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사진은 바래고, 몸은 무거워지고, 기억은 가끔 헛갈리지만, 그래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아직도, 처음처럼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 떨림이, 바로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테니까.



작성 2026.05.31 06:31 수정 2026.06.0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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