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漢儒學] 융중(隆中)의 와룡과 '우주'를 품은 어른을 그리며
先生龍臥此山丘 (선생룡와차산구) 선생께서는 이 산언덕에 용처럼 누워 계셨고,
宇宙曾經幾運籌 (우주증경기운주) 우주(세상)를 위해 몇 번이나 장막 속 지략을 펼치셨던가.
一自英雄三顧後 (일자영웅삼고후) 영웅이 세 번 찾아온 그때 이후로,
至今車馬不曾休 (지금거마부증휴) 지금까지 참배하는 수레와 말이 쉬지 않고 이어지네.
시제(詩題)인 ‘알무후도중(謁武侯道中)’은 “무후(제갈량)를 참배하러 가는 길에”라고 다듬어 읽을 때 시적 운치가 가장 깊어진다. ‘알(謁)’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높고 푸른 어른을 경건히 찾아뵙는 ‘참배’와 ‘알현’의 정성을 품고 있는 까닭이다.
이 시는 충의(忠義)와 지혜의 대명사인 제갈공명(諸葛孔明)을 향한 깊은 추모와 존경을 나지막이 읊조린 북송 시인 추호(鄒浩)의 명작이다.
첫 구에서 화자는 융중(隆中)의 산언덕에 와룡(臥龍)으로 누워 때를 기다리던 청년 제갈량의 아늑한 은거를 떠올린다.
이 시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둘째 구에 등장하는 ‘우주(宇宙)’라는 시어다. 오늘날 우리에게 ‘우주’는 별과 은하가 꿈틀거리는 무한한 외계 공간(Universe)으로 읽히지만, 동양 고전(東洋 古典)의 맥락에서 우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를 품고 있다.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위아래와 사방을 ‘우(宇)’라 하고, 예부터 지금까지 흐르는 세월을 ‘주(宙)’라 한다(上下四方謂之宇 古往今來謂之宙)”고 했다. 즉, 고전에서의 ‘우주’는 단순한 별자리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온 세상과 시대, 시간과 공간이 얽힌 천하(天下)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둘째 구의 ‘우주증경기운주(宇宙曾經幾運籌)’는 제갈량이 골방에 앉아 아득한 우주를 바라보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시대 전체, 즉 사분오열되어 피 흘리던 온 천하와 백성들의 삶(宇宙)을 가슴에 품고, 장막 안에서 산가지(籌)를 튕기며(運) 천하 삼분지계의 지략을 몇 번이나 짜내었던가 하는 경건한 헌사다.

셋째 구는 삼국지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인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지목한다. 제왕의 기개를 가진 영웅이 무릎을 굽혀 세 번이나 시골 초가를 찾았던 그 온당한 예우와 결단. 온 세상(宇宙)을 구하고자 했던 와룡의 경륜과 사람을 알아본 영웅의 진심이 만난 순간, 촉한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천하를 향한 제갈량의 걸음도 비로소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구는 그 울림의 현재성이다.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이 흘렀건만, 그가 머물던 자리와 그를 모신 사당(武侯祠)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수레와 말이 끊이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권력과 영화는 한낱 먼지처럼 사라졌으되, 오직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어서야 끝난다(鞠躬盡瘁 死而後已)'는 충의를 실천했던 한 인간의 숭고한 정신은 세세손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 사당으로 향하는 참배객들의 거마(車馬) 소리를 들으며, 문득 고개를 돌려 오늘 우리 정치판의 참담한 풍경을 바라본다.
특히 혼란과 분열의 늪에 빠진 지금의 여당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씁쓸함을 금할 길 없다. 물론 당과 정부를 향해 매서운 쓴 소리와 정곡을 찌르는 통찰을 마다치 않는 유시민 작가와 같은 뛰어난 논객이 존재한다. 하지만 당이 이토록 미증유의 위기에 처하고 혼돈으로 휩쓸릴 때, 쓴 소리를 넘어 정국의 판을 읽고 당의 전면에 서서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던 거목, 과거 고(故) 이해찬 전 대표와 같은 실천적 어른의 부재가 유독 뼈아프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잔챙이 정치가들은 눈앞의 계파 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 참된 어른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공동체 전체(宇宙)를 가슴에 품는다. 융중의 초가로 찾아가 진심을 다했던 유비의 삼고초려나, 난국 속에서 당과 나라의 중심을 굳건히 잡았던 시대의 어른이 그리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는 말한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던 시끄러운 잔챙이들의 정치는 한때의 소란으로 잊혀 지지만, 세상을 품고 시대를 짊어졌던 참된 어른과 장수의 발자취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난세일수록 필요한 것은 목소리 큰 정치인이 아니라, 우주를 품을 줄 아는 어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