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이었다.
임플란트를 보수하러 평소 다니던 치과에 갔다. 치료를 받으며 어금니도 조금 아프다고 말씀드렸다.
위쪽 어금니 위 잇몸 부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처치를 받았고, 바로 다음 날 그 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당시에는 치과 치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치과를 찾았다. CT를 찍고 염증이 많다는 설명을 들었다. 항생제와 소염제를 2주분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니 붓기가 금방 내려갔다. 큰 통증도 사라졌다.
‘역시 염증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부었다. 오래 복용하는 것이 걱정돼 약을 멈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증상이 돌아왔다.
치과에 이 사실을 알렸다.
다시 CT를 찍었고, 의료진이 다른 병원에 영상 검토를 요청했다. 정밀검사를 받아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암은 무슨 암이야.’
‘이를 치료하다가 문제가 생긴 거겠지.’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치과 처치 이후 붓기가 시작됐다는 사실과,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다른 문제였지만 당시에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후 비슷한 증상을 잘 본다는 치과를 서너 곳 더 찾아갔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곳에도 비용을 들여 방문했다.
여러 검사를 받았고, 당시에는 암이 아니라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
그 말에 기대고 싶었다.
한 치과에서는 잇몸에 관을 넣어 배액하는 처치를 받고 약을 먹었다. 오랫동안 치료해야 한다는 설명도 들었다.
몇 차례 다녔지만 좋아지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곳의 치료도 중단했다.
그렇게 항생제와 소염제를 복용하며 겨울을 지났다.
붓기가 가라앉으면 안심했고, 다시 부으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
2025년 3월 초, 얼굴이 유난히 심하게 부은 날이 있었다.
집 근처 치과를 찾았더니 봉와직염으로 보인다는 설명을 들었다. 상급병원에서 빨리 진료받아야 한다며 소견서를 써주셨다.
그날 바로 서울아산병원으로 갔다.
외래에서 상태를 확인한 뒤 응급실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당시는 진료가 혼잡해 응급실에 들어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여러 절차를 거쳐 접수했고, 응급으로 CT를 찍었다.
한참을 기다린 뒤 바로 입원하라는 말을 들었다.
왜 입원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암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어금니가 아프다고 치과를 찾았던 일이 여기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입원 후 검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일주일 정도에 여러 검사를 받았고, 입원 2주째 조직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상악동암 4기였다.
이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외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치료에 관한 설명은 두려웠다.
종양내과에서는 종양이 커 도세탁셀 등이 포함된 항암치료를 먼저 해보고 반응을 살펴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수술 과정에서 눈까지 적출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말이 특히 무서웠다.
당시 방사선치료에 대해서도 적용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진료의 말들은 하나같이 상황이 많이 진행됐다는 무게로 남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막막했다.
그래도 치료는 시작해야 했다.
3월 말, 닷새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 내게는 강도가 높고 힘든 치료로 느껴졌다.
그동안 다른 치료 가능성도 찾아봤다.
일본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서류를 준비해 보내고 두 곳의 의견을 알아봤다.
갑작스러운 진단 이후 모든 것이 급하게 흘러갔다.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두손바이오를 통해 일본 동주요법에 관한 안내를 받았다.
여러 내용을 살펴본 뒤, 나는 그 치료가 내 상황에 더 적절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일본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후 나는 그 결정을 내 치료 여정에서 중요한 선택으로 기억하게 됐다.
물론 그때는 앞으로 어떤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두 알지는 못했다.
반복되는 붓기를 염증으로 생각했던 시간,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마음, 응급실에서 입원을 결정하던 순간.
그리고 상악동암이라는 이름을 듣고 치료할 방법을 찾아 나섰던 날들.
이것이 내가 암을 발견하고 첫 치료를 시작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일본에서 이어간 치료 과정은 다른 글에 기록해두었다.
다음에는 2026년 8월 19일 재발 소식을 들은 뒤, 다시 치료를 준비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때도 충격은 컸다.
그래도 나는 다시 방법을 찾았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다음 걸음을 찾으며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 이 글은 암환우 카페 ‘암행권’ 회원 셀라비님이 2026년 9월 12일 게시한 「1 상악동암 발견하기까지」를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진단과 의료진의 설명은 글쓴이가 기억한 당시 경험이며, 의무기록은 별도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치과 처치와 암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 구체적인 병기 범위는 원문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일본 치료 선택에 관한 평가는 글쓴이 개인의 경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