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아 칼럼 ]강물처럼, 노래는 국경을 건넌다

제8회 코스미안상 은상

학창 시절 하굣길, 내 이어폰에서는 아무로 나미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일본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찾아보며 화면 속 낯선 거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을 익혔다.

 

비슷한 시기, 야후재팬을 통해 알게 된 일본인 친구 사쿠라는 보아와 동방신기의 노래를 좋아했다. 《겨울연가》에 푹 빠진 그녀의 어머니는 환갑이 되기 전에 남이섬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사쿠라와 나는 서로의 나라에 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인 적이 없었다. 우리는 그보다 먼저 노래를 주고받았고, 좋아하는 가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가 사이에는 외교와 회담이 있지만, 사람 사이에는 취향과 공감이 있다. 정치가 국경선을 선명하게 긋는 동안에도 문화는 그 선을 가볍게 넘어 서로의 일상 안으로 스며든다.

 

한일관계는 과거를 묻어둘 수 없는 관계다. 식민 지배와 강제동원의 역사는 오늘의 외교적 편의를 위해 지우거나 흐려서는 안 된다. 대중문화가 그 역사를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다.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이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거나 양국의 입장 차이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것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일본인을 하나의 얼굴로 뭉뚱그리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도 한국에 대한 인식을 몇 개의 자극적인 뉴스와 편견만으로 판단하는 태도 역시 지양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진실로 경계해야 할 것은 기억 자체가 아니라, 기억을 상대를 단순화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태도다.

 

음악은 바로 그 단순화를 무너뜨리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해낸다. 나는 일본 음악을 들으면서 그곳에도 사랑에 실패하고,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가족과 다투고,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배웠다. 사쿠라 역시 한국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한국을 추상적인 이웃 국가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2015년과 2017년, 그리고 2024년에 찾은 도쿄 신오쿠보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거리에는 한국어 간판이 늘어서 있었고 한국 음식점과 화장품 가게에는 일본인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거창한 외교적 신념 때문에 그곳을 찾은 것이 아니었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기 위해서, 한국식 화장을 따라해보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국가 간의 이해는 어쩌면 그런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해는 상대의 역사와 제도를 모두 공부한 뒤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노래 한 곡일 수도 있고, 가수의 근사한 외모, 혹은 드라마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 작은 호기심이 반복될 때 낯선 대상은 익숙한 존재가 되고, 익숙한 존재는 어느덧 긍정적인 화학 작용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몇 해 전, 한일 가수들이 함께 출연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일본 가수 우타고코로 리에가 부른 노래가 한국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청자들은 처음에는 낯선 일본 가수를 바라보았지만, 노래가 시작된 뒤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와 그 안에 담긴 공감을 들었다. 국적은 잠시 뒤로 물러난 자리에 어느새 들어온 것은 ‘감정’이었다.

 

이것이 음악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음악은 상대의 주장을 법이나 논리로 꺾지 않는다. 대신 상대를 한 명의 인간으로 마주하게 한다. 국제법이 사람을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집단으로 부를 때, 음악은 그 집단 안에 비슷한 얼굴과 사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롯이 보여준다.

 

사쿠라와 내가 서로의 노래를 주고받던 시절, 우리는 외교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작은 교환 속에는 어떤 공식 회담보다 소박하고 끈질긴 관계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고 믿는다.

 

일본의 유명 가수인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흐르는 강물처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산다는 건 여행을 떠나는 것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길 위해서”

 

강물은 자신이 지나온 자리를 지우지 않는다. 그저 수많은 굽이와 흔적을 품은 채 앞으로 흐를 뿐이다. 음악도 그렇다. 모든 게 멈춰 선 순간에도 음악은 강물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그렇게 국경을 초월한다.

 

세계화 시대에 모든 이들이 이렇듯 한 자리에 고여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기억을 품은 채, 때로는 부딪치고 때로는 나란히 흐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성 2026.10.16 09:55 수정 2026.10.16 10:26

RSS피드 기사제공처 : 코스미안뉴스 / 등록기자: 한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NEWS 더보기
AI부동산경제신문 부동산 30초 브리핑 2026년 10월 16일(금)
사장님! 이것만은 꼭 챙기세요.
신규창업vs인수창업?
AI광고 영상 제작부터 광고 송출까지 가능한 광고대행사 준콤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의 목소리를 담는 뉴스 더초이스
합법적 채무탕감 개인회생!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개인회생상담 ..
️ 미국 핵심광물에 20억 달러 이상 투자…한국엔 위기일까, 기회일까? ..
인류와 지구의 더 나은 미래, 행동하는 환경 저널 '에콜로지 코리아(EC..
선무도 #골굴사 #전통무예 #친일반민특위
소상공인 동행-대경배관수리편-
권리금 분석은 어떻게?
더초이스 비즈니스 어워즈 고객의 선택과 신뢰를 공식적인 브랜드 가치로 증..
[준콤] 서오릉장어대장_엘리베이터광고_30초(2026)
두산위브더제니스 부천, 더블역세권 49층 2,008가구 대단지 주목!
KTX·SRT 하나의 앱으로 예약!코레일+#KTX #SRT #코레일플러스..
계좌의 내 돈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친환경 캐릭터 굿즈로 소비자 마음 사로ᄌ..
독립 운동가 김시현
요즘 비트코인 근황
유기농 유정란 가격 비교
서울 아파트값 86주째 상승 \'역대 최장\'
프랜차이즈 가맹점 매도는 어떻게?
허경환 유행어 총출동! 판촉물은 세종기프트
천재 강아지 다이빙
스프링힐스, 친환경 골프장으로 18ᄒ..
선무도 골굴사 #반민특위 #korean #독창성 #골굴사 #선무도 #..
해외부자들은 코인을 얼마나 들고 있을까? (2편)
귀농귀촌매뉴얼북이 PDF책으로 나왔습니다. 잎새영상
유튜브 NEWS 더보기

리더경제 신천지 민주당 가입 의혹https://www.leader-economy.kr/news/475157#...

리더경제 재정 구조를 지적하려던 ‘빨대’ 비유https://www.leader-economy.kr/news...

리더경제 ‘일억 원 공천헌금’ https://www.leader-economy.kr/news/47507#리...

리더경제️ 검찰개혁에 반대했던 김지용 후보자https://www.leader-economy.kr/news/4...

[단독] \"의장 만든 게 누군데\"…김현 의원, \'공천 이견\' 시의장과 설전 녹취파일 [뉴스9]

피 거꾸로 솟게 한 김현의 발언

박태순 안산시의회 의장 기자회견…“지역 국회의원이 폭력적 발언” [경기/한빛]

[단독] \'보좌관 공천\' 문제가 발단…김현, 경쟁후보 지지한 시의장 \'야간 질책\' [뉴스9]

안산시청에서 안산호수공원까지! 하늘에서 본 안산의 새로운 모습|안산 드론 항공영상

[안산줌인] 안산의 축제는 계속된다 2026 대부포도축제 / 제6회 청년의 날 축제

[안산줌인] 우리 아이도 혹시 영재..? 한양대ERICA 영재교육원 신입생 모집!

[안산줌인] 안산 시승격 40주년 ! 산업, 경제 발전의 역사

[안산시 승격 40주년 기념 KBS 다큐 On] 반월·시화 청춘史

2026 안산 e스포츠 페스티벌 스케치 영상

[안산 꼬꼬무] 돈다발이 담긴 의문의 가방?|안산시 예산의 모든 것

73만 시민이 함께 만든, 위대한 40년! | 안산시 승격 40주년 · 제41회 시민의 날 기념사_이민근 안...

시민과 함께 안산, 내일을 잇다!

상지카일룸 밤섬, 동네한바퀴 #1

민경선 시장의 탄원서에 대한 역질문 ②|고양시 식수원 안전, 무엇으로 검증했습니까? |산황동 스프링힐스 18...

리더경제 인천 묻지마 칼부림https://www.leader-economy.kr/news/474832#리더...